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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보수적 입맛 영국도 한식에 눈뜨다
등록일 2014-01-10 오전 11:15:35 조회수 4104
▲ 런던 시내의 한식당들. ‘코리안 바비큐’를 내건 ‘요리’(위)와 비빔밥 체인점 ‘비빔밥’

화려하고, 대담하고, 극적인…

최근 몇 년 사이 영국 런던에서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퓨전 한식당 몇 개가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작년에 문을 연 ‘김치’와 3년 전 문을 연 ‘코바’가 대표적이다. ‘김치’는 서양식 퓨전스타일의 한식을 파는데 런던 젊은이들이 점심시간 길게 줄을 설 정도이고, ‘코바’ 역시 영국 최고 외식·문화·공연 잡지인 ‘타임아웃’으로부터 별 5개 만점을 받을 만큼 인정받고 있다. 작년 런던의 최고 중심지인 소호 ‘먹자골목’인 그릭 스트리트에 문을 연 ‘비빔밥’도 최근 런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빔밥’은 음식 레시피를 규격·통일화한 전문 체인점을 시도하며 앞으로 2, 3호점도 연다는 계획이다.
한식은 완고한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이제 ‘쿨(cool)’한 음식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오래되고 성공한 한식당 주인들은 대개 주방장 출신의 1세대 교민이지만, 수년 전부터 주방장을 고용해 식당을 운영하는 젊은 전문 경영인들이 늘면서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트렌디한 한식당이 늘고 있다. 영국의 한식당은 이제 막 교민 사회를 벗어나 영국 사회로 첫걸음을 옮기는 상황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한식당의 성장 여지는 아직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치’에서 보듯 요즘 문을 연 영국의 한식당들은 이름부터 이전과는 다르다. 기존 한식당들은 ‘가야’ ‘아사달’ ‘아리랑’ ‘신라’ ‘고려’ ‘백제’ 같은 한국인들만 아는 고유명사를 식당 이름으로 썼지만 지금은 같은 한국 이름이라도 한국의 대표 음식 이름을 앞세운 식당들이 부쩍 늘었다. ‘비빔밥’ ‘김치나라’ ‘김치공주’ ‘불고기’가 대표적이다. 한식 요리 이름을 써도 이제 한식당인 줄 안다는 뜻이다.
요즘 영국 언론이나 인터넷 블로그에 등장하는 한식에 대한 표현은 새로운 ‘미지의 음식’에 대한 흥분의 단어로 가득 차 있다. ‘화려하고(colourful), 대담하고(bold), 극적이고(dramatic), 극단적이고(extreme), 폭발적이고(explosive), 야하다(gaudy)’같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난무한다. 게다가 ‘아주 강하게 발효되어(strongly fermented)’ 익숙해지려면 ‘교육을 받아야 하고(to be educated)’ ‘경험이 있어야(need to be experienced)’ 한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말 ‘경험 없고 교육받지 않은’ 영국인들이 한식을 한번 먹어 볼까 하다가도 도망갈 정도의 소개다. 필자가 접한 한식에 대한 가장 매혹적인 평은 ‘강한 맛에 성애적으로 유혹당했다(erotically seduced)’이다.
한식에 호의적인 비평가들은 한식의 맛은 세계 어느 음식과도 다른 특이한 맛이 있다고 칭찬한다. 그중 하나가 영어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고소한 맛’이다. 필자의 판단으로 이는 영국인이 요리에 거의 안 쓰는 참기름의 맛 때문이다. 음식의 기본 맛인 달고(sweet), 시고(sour), 쓰고(bitter), 짜고(salty), 맵고(spicy)는 어느 나라 요리에나 있다. 그러나 한식에는 또 하나의 맛인 ‘고소함’이 있다고 칭찬하는 음식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또 “한식은 다섯 가지 맛이 아주 강하게 배합되어 있어 중독성이 있다”는 평을 한다.
영국 음식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한식의 변형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를 두고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한식은 한 상에 모든 요리를 늘어놓고 먹어야 한다. 요리 하나하나가 차례로 제공되는 코스 요리가 아니다. 하지만 영국인이 주 고객인 고급 한식당들은 영국인에게 익숙한 코스식으로 변형된 정찬 한식을 제공한다. 한식을 담아 내는 방식도 한식이라기보다는 서양 요리 같은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때문에 한식에 정통한 일부 영국 음식 비평가들은 “이것은 한식이 아니다”라고 평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이어야 한식”이라고 충고한다.
물론 한식에, 특히 양념에 익숙지 않은 영국인들에게는 한식이 정말 ‘잡동사니의 중독성의 맛(mishmash of intoxicating flavours)’임이 분명하다. 한식을 나쁘게 비판하는 영국 음식 비평가들은 “한식은 양념을 많이 써서 너무 자극적”이라고 혹평한다. “식재료 고유의 맛을 잃어버린 양념 맛의 음식일 뿐이어서 모든 요리 맛이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인만이 알 수 있는 밋밋한 무미의 음식”이라고까지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효음식이 너무 많고 광범위하게 쓰여서 냄새가 역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식을 좋아하고 자주 먹는 영국인은 “한식은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 음식을 짜게 먹는 영국인들에게도 한식은 너무 짠 음식이라는 불평이 나온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국인은 한 접시의 요리를 여러 명이 나눠 먹는 데 익숙지 않다. 또 반찬(side dish)을 주식(main dish)과 같이 먹는 관습도 없다. 코스 요리 식당이 아닌 일반 한국 교민이 가는 식당에 온 영국인은 주식이 나오기 전 상에 차려지는 반찬을 전채(前菜·appetizer)로 보고 다 먹어버린다. 밥과 같이 먹기 위해 만든 짠 반찬을, 그것도 김치도 한 접시, 깍두기도 한 접시 따로 시켜서 샐러드처럼 먹는다. 당연히 “한식은 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은 한식의 기본인 김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영국의 한식당에 가면 어떨 때는 금방 담근 싱싱한 김치가 나오고, 또 어떨 때는 삭은 김치가 나온다. 같은 김치인데 왜 이렇게 맛이 다른지 영국인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게 당연하다. 김치의 맛은 항상 일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영국 음식 평론가들 중에서는 “제대로 된 한식당이라면 적어도 발효 단계가 다른 김치를 손님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영국의 음식 평론가들 중에 “한식은 다양하지 못하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 식당에 비해 요리가 단순하고 어느 식당을 가도 유사한 요리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식당에 따라 그 식당 특유의 요리가 없다는 평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 다녀온 영국인 한식 팬들은 “왜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떡볶이나 양념통닭 같은 음식을 한식에 포함시키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비주류로 취급받고 있는 한식 요리도 주류 음식에 포함시켜도 될 만큼 훌륭하다는 말이다.
어쨌든 입맛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영국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일식이나 중식처럼 이미 자리를 잡으면 시비를 걸 이유도 없고 그냥 싫으면 안 가면 되는데, 막 알려지기 시작한 음식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셈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나쁜 홍보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bad publicity)’는 말을 감안해 ‘호의적인 악평’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식을 먹어본 영국인들이 한식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요리는 김치, 갈비, 불고기, 비빔밥 등 모두 양념이 강해 맛이 진하고 색깔이 화려해서 깊은 인상을 주는 요리들이다. 필자와 가까운 영국인들 중에 이런 음식을 처음 맛본 소감을 “한국인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역동적인 한국인과 산업화된 한국이 컬러풀하고 극적인 한식의 맛과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사실 영국인은 전통적으로 요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영국 요리는 맛이 없기로 유명해서 오랫동안 세계인의 조크 대상이었다. 그런 영국인들에게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수년 전부터 TV의 요리 프로그램이 시청률 상위를 기록하고 있고, 스타 요리사가 유명인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는 미슐랭가이드북에서도 나타난다. 2012년 미슐랭가이드북에서 별을 받은 영국과 아일랜드 식당이 176개나 됐다. 1974년만 해 도 겨우 25개의 식당이 별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천지개벽의 수준이다. 영국의 한식당 중 하나가 언제쯤 미슐랭 스타를 받을지는 모르나 텔레그래프, 타임스, 이브닝스탠더드 등 유수 언론 매체들도 이젠 가끔씩 한식당 평을 한다. 영국인들이 이제 요리를 찾아 먹으려는 시점에 한식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젊은층 손님 늘고 한번 먹고 가면 꼭 다시 옵니다”
‘아사달’ 박화출 사장


런던의 영국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홀본’ 지하철역에 있는 한식당 ‘아사달’은 영국에서 성공한 한식당 중 하나다. 식당 위치가 세계 금융 중심지 ‘시티’와 영국 고등법원을 가까이에 두고 있어 손님 대부분이 음식 단가에 구애받지 않는 고급 손님들이라서 음식값이 비싸다. 10년 전부터 ‘아사달’을 운영해온 박화출(62) 사장은 작년 런던의 최고 중심지인 소호 ‘먹자골목’인 그릭 스트리트에 대중적인 비빔밥 체인점 ‘비빔밥’을 열었다.
박 사장은 성공적인 영국 한식당의 비결로 “조금 짜게 요리해야 한다”며 ‘비빔밥’ 체인점이 영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20·30대 젊은층 손님이 많이 늘고 있고 한번 다녀가면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빔밥을 돌솥에 담아 내놓고 있는데, 일단 준비된 재료를 얹어만 주니 일손이 많이 필요없고 해서 체인점화 성공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계획 중인 2, 3호점을 위해 재료 공장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7월에 2호점 문을 열 계획입니다.”
박 사장은 영국 젊은이들이 비빔밥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신선한 채소와 재료로 만든 새로운 종류의 음식인 데다 가격도 착하기 때문”이라며 “뜨거운 돌솥에 담아 내는 음식이 특이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사장은 “한식을 잘 아는 영국인 중에서는 한국에서 하듯이 반찬을 공짜로 안 준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고 김치가 왜 싱싱하지 않냐는 항의도 한다”며 “한식이 제대로 알려지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겠냐”고 했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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