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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국인 관찰기 - 여왕에 열광하는 영국인
등록일 2014-02-05 오전 11:15:35 조회수 5472
▲ 지난 3월 9일 의회 연설을 마친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 필립공과 의사당을 떠나고 있다.

평생 함께한 공기 같은 존재 그냥 좋아하고 존경 영국의 대표 브랜드가 여왕

6월 2일이 86세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일이었다. ‘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bilee)’라고 불리는 즉위 60주년을 맞아 영국 전체가 축제 무드다. 영국 정부는 기념일인 6월 2일을 휴일로 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이 토요일이라 월요일로 휴일을 미루려 했으나 월요일도 정기휴일인 뱅크 홀리데이여서 또다시 하루가 밀렸다. 결국 나흘의 황금연휴가 이어지면서 축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일요일인 6월 3일은 축제가 최고조에 달했다. 런던 템스강에서는 여왕이 탄 어용선을 선두로 각종 장식을 단 보트 1000여대가 뒤따르는 장관이 펼쳐졌다. 보트들은 영국 전역은 물론 영연방 국가들과 세계 각국에서 보내왔다. 이날 영국 전역에서는 점심시간에 골목길을 막고 이웃들이 상을 펴고 식사를 하며 동네별 축제가 벌어졌다. 이런 길거리 대낮 파티 축제는 영국의 전통적인 축제 형식이다.

월요일인 4일 저녁에는 버킹엄궁에서 콘서트가 열린다. 여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이 참여하는 콘서트에 일반인들도 추첨을 통해 참석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팝송과 클래식이 어우러진 이 축제의 출연진은 화려하다 못해 하늘의 별이 무색해 빛을 잃을 정도다. 게리 발로, 애니 레녹스, 로비 윌리엄스, 클리프 리처드, 랑랑, 알피 보, 톰 존스, 카일리 미노그, 레니 플레밍, 스티비 원더, 앨튼 존, 폴 매카트니 등의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콘서트가 끝나면 바로 봉화 행사가 이어진다. 2012개의 봉화가 영국 전역과 영연방국에서 점화되고 여왕도 중심 봉화(National Beacon)를 점화한다. 화요일인 5일 여왕은 성 바오로 성당(St. Paul Cathedral)에서 감사예배를 드린 뒤 웨스터민스터 홀로부터 버팅엄궁까지 공식 마차 행진을 벌인다.

성대한 즉위 60주년 잔치

이렇게 해서 영국에서는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시작으로 올림픽 기간까지 6~7월 두 달 동안의 축제가 시작됐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축제 프로그램을 담은 ‘런던 2012’라는 안내책자는 140쪽에 달한다. 가히 두 달 동안 전국이 여왕 즉위 축하와 인류의 축제라는 올림픽이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로 흥청거릴 조짐이다. 런던이 기를 쓰고 2012년 올림픽 개최를 추진한 데는 이런 국가적인 축제를 한꺼번에 몰아 축하하자는 의도가 숨어 있었음에 분명하다. 작년의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벌어지는 축제는 분명 국가경제나 국민의 의식에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축제를 지난해와 올해 한꺼번에 다 써먹고 나면 이제부터는 무엇으로 축 처진 국민의 어깨를 올려줄 건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그래도 영국인은 이런 흥행에는 귀재들이니 또 뭔가를 분명 만들어낼 것이다.

영국 역사에서 제위에 가장 오래 있었던 왕은 제위 64년의 빅토리아 여왕이다. 하지만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건강상태로 보면 이 기록은 분명 깨지리라고 모두들 예상하고 있다. 해서 찰스 왕세자가 당분간 왕이 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세간의 숙덕거림도 별로 틀릴 것 같지 않다. 아직 여왕은 공식적으로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다. 남편 필립 에든버러 공만 최근 심혈관 확장 수술을 받았을 뿐 여왕 본인의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버킹엄궁 홈페이지(www.royal.gov.uk)에 나오는 여왕의 일정을 봐도 그렇다. 대영제국의 여왕과 16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s)의 국가 수반, 그리고 54개국으로 구성된 영연방 회원국 연합 대표를 겸하고 있는 사람의 일정답게 하루도 빈틈이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많은 나라의 국가 수반을 맡고 있으니 아플 틈이 어디 있겠나 싶다.

영국인들이 여왕에게 갖는 호감도는 때에 따라 부침이 있긴 하지만 70% 이하를 내려간 적이 거의 없다.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이 죽던 1997년 즈음해서가 가장 낮았으나 그 이후 꾸준히 좋아져서 지난해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 때 최고조에 달했다. 일반 영국인들에게 여왕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개들 쉽게 대답을 못한다. 평소에 왜 좋아하는지를 따져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여왕이 존재했기 때문에 별로 심각하게 그 존재를 의식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흡사 공기의 의미를 평소에는 못 느끼고 있다는 식의 논리인 셈이다.

궁 밖에서 태어난 유일한 왕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 역사상 궁 밖에서 태어난 유일한 왕이다. 원래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는 차남이어서 왕위를 이어받을 위치에 있지 않았다. 때문에 여왕은 시내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여왕의 아버지 앨버트 왕자는 형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 이혼녀 왈리슨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함으로써 조지 6세 왕이 됐다. 보통 에드워드 8세의 양위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버린 ‘세기의 사랑’으로 미화돼 왔다. 하지만 영국 공문서 공개로 연전에 밝혀진 바로는, 심슨 부인이 독일 스파이여서 계획적으로 에드워드 왕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실제 에드워드 왕은 독일과의 전쟁 시작 전에 독일을 옹호하는 의견을 많이 냈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이후 독일과의 전쟁이 터지자 영국 정치권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에드워드 왕의 양위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될 것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될 신분이 되어 버렸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버지 조지 6세의 부음을 들은 것은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여왕은 나무 위에 사는 부족의 집에 올라갔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여왕은 바로 나무에서 내려와 귀국을 재촉했는데, 그래서 역사가들은 ‘공주의 신분으로 나무에 올라갔다가 여왕이 되어 내려왔다’고 쓰고 있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도 아주 흥미롭다. 여왕은 13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아버지를 따라갔다. 이때 그리스 왕자이던 필립공이 여왕과 동생 앤 공주를 위해 학교를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여왕은 한눈에 반해버리고 바로 필립공에게 편지를 쓰면서 접근한다. 그 이후 8년간 둘의 사랑은 지속됐고 여왕의 나이 21세에 원하던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스 왕자라고는 하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 쪽으로의 촌수를 따지면 팔촌(Third Cousin) 사이인 필립과의 결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우선 필립공이 다스릴 나라가 없는 이름뿐의 왕자이고 거의 무일푼이어서 왕족이라는 조건 말고는 모든 점이 불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플레이보이에 노름꾼이라 영국 왕실 측근들은 아주 꺼렸다. 그의 아들 역시 거칠고 무식하고 아마 플레이보이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왕비도, 물론 나중에는 “정말 영국 신사”라고 사위에 대해 감탄했지만, 처음에는 싫어해서 ‘훈(Hun)족’이라고 빈정거렸다. 아버지(조지 6세)가 찬성해서 결혼했으나 엘리자베스의 나이가 2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서 1947년에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결혼식에 독일로 시집간 필립공의 누이들은 초청을 못 받았고 전왕 에드워드 8세도 참석을 못했다. 당시 영국은 2차대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였다.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결혼식 드레스 천을 배급 쿠폰으로 구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둘의 결혼식은 전쟁으로 인해 침체됐던 나라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전 세계에서 2200종의 결혼 선물을 받는 아주 큰 행사로 치러졌다.

‘스캔들’ 왕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 생활은 큰 위기가 없었고 둘 사이 금실이 상당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워낙 오래된 얘기라 이제는 세인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으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스캔들도 있었다. 필립공과 뮤지컬 가수 커크우드(Kirkwood)와의 염문으로, 이는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기자들이 분명 두 사람이 공연 후 식사를 하고 춤을 춘 뒤 그 다음 날 아침을 같이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두 사람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한 독일 신문은 ‘필립공의 사생아가 24명’이라는 것을 버킹엄궁이 확인해 주었다고 보도해서 유럽을 발칵 뒤집은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자신들이 ‘필립공의 대자(god children)를 오역했다’고 변명했지만 영국 왕실전기 작가는 ‘영국 왕실의 전통에 원래 그렇게 사생아를 대자로 하는 전통이 있어 필립공의 대자들은 대개가 그의 사생아’라고 비공인 자서전에 썼다.

사실 여왕을 괴롭힌 것은 필립공이 실제 바람을 피웠는지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필립공을 포함해 영국 왕실을 둘러싸고 염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여왕을 괴롭혔을 수 있다. 심지어는 여왕마저 왕실 경주마 매니저(Lord ‘Porchy’ Carnarvon)와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도 나돌았었다. 이는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승마 코치와의 염문을 연상케 해 고부간이 모두 승마와 관련한 염문이 나돌았다는 우연이 흥미롭다. 물론 여왕과 가까운 측근 누구나 그 소문은 “완벽한 소설”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현재 그 경주마 매니저의 아들은 ‘이상하게도’ 백작 작위를 받았다. 그래서 그 염문의 소문이 우연이 아니지 않으냐는 또 다른 소문을 키웠다.

필립공의 친구들은 필립공이 “수차례의 스캔들(a number of affairs)을 일으켰다”는 점은 인정한다. 동시에 여왕의 측근들은 “그녀 자신이 바람기가 많은 남자와 결혼한 점을 언제나 받아들였다(Queen has always accepted that she married a man who, as one of her circle puts it, ‘take a lot of amusing)”고 말한다. 또 “그녀는 남자들 중에는 그런 일이 필요한 남자도 있다고 보고 한때의 바람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였다. 그들이 그렇다고 자신의 아내 사랑에 소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I believe she has accepted the occasional fling as unimportant because she understands that some men have certain needs, and that doesn’t mean they love their wives any less)”라고도 한다.

영국 할머니들 사이에는 여왕 부부와 관련해 아직도 많은 옛날 얘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지금도 영국 할머니들은 “워낙 엘리자베스 여왕이 훌륭하고 필립공을 사랑해서 그 바람쟁이를 데리고 살았지…”라고 말한다. 반면 여왕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여왕은 그런 일을 벌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여왕은 언제나 필립공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다른 생각을 절대 못했다”면서 필립공도 한때의 바람기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여왕에 대해 절대적으로 헌신한다(Philip remains utterly devoted to the Queen)”고 얘기한다.

여왕의 골칫거리는 필립공?

사실 두 사람이 장난치고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을 보면 저 사람들이 과연 금혼식을 한 사람들인가 의심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난다. 그런 둘의 사랑은 가까운 사람들을 감동시켜 충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왕은 항상 필립공의 건강을 챙길 뿐더러 ‘거친 스포츠’(carriage driving·마차 경주)를 하는 필립의 안위를 걱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필립공은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아직도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의 측면이 있다. 심지어는 옛날 보디빌더들이 사용했던 스프링 근육운동 기구를 여행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이를 두고 필립의 친구들은 “필립공이 여왕에게 짐이 안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체력을 챙긴다”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를 위해서(not out of love for himself but for his wife)”라는 것이다. 필립의 친구들은 “힘든 시기를 지날 때도 서로 의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만일 지금 여왕이 필립공을 잃는다면 아주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한다. 흡사 대처 전 총리가 남편 데니스를 잃고 갑자기 치매가 진행된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지를 걱정하는 투다.

필립공은 실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실언은 ‘왕실의 실언(Royal Slip of Tongue)’으로 불린다. 그중 하나는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에 체류 중인 영국인들에게 “당신들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 너무 오래 있으면 중국 사람들처럼 찢어진 눈이 된다”고 한 말이다. 또 호주를 방문해서는 원주민들에게 “당신들은 아직도 서로에게 창을 던지고 전쟁을 벌이냐”고 묻기도 했고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에게 “거식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를 잡아 먹는 것을 아느냐”고 물어 주위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거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흡사 그는 ‘왕은 무염무치(無厭無恥)’라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여왕이 통치하면 융성하는 나라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있어 이제 가장 골칫거리는 남편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은 자식들 때문에 가장 골치가 아팠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나, 한때는 한 해에 두 아들과 딸이 다 이혼과 별거를 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결국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영국 왕실이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여왕도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국민과 가까이하려는 노력을 한다. 여왕도 영국에 존재하는 무등록자 중 한 명이다. 여왕은 아무 곳에도 신분과 관련된 등록을 하지 않는다. 여권도 없어서 해외 방문을 할 때는 입국 신고도 하지 않는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번호가 없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라는 말이다. 어쨌든 아무런 등록을 하지 않는 여왕이 이제는 자진해서 세금을 낸다. 그렇게 해 봐야 결국 그 돈이 돌고 돌아 왕실 유지비로 오긴 하지만 그래도 형식은 밟는 셈이다. 왕실이 휴가를 가는 여름 두 달 동안 버킹엄궁전을 개방해서 그 돈으로 윈저성 화재 복구비를 댄다든지 하는 일도 결국은 국민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또 성별에 관계 없이 먼저 난 자식이 차기 왕권을 이어받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영국의 대표적 수출품이 뭐냐고 필자에게 물으면 “관광, 영어 그리고 여왕님”이라고 농한다. 여왕이 관광을 비롯한 영국 경제에 직접 기여하는 바는 무엄하게 숫자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 해도 클 것임이 분명하다. 영국 하면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왕은 지난 60년간 자신의 이름을 성공적으로 관리했다. 심지어 영국의 한 신문 칼럼은 ‘여왕의 브랜드 유지 및 마케팅 사례는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 대상’이라고까지 극찬하기도 했는데 아주 공감이 갔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여왕이 통치하면 융성한다. 엘리자베스 1세 때는 찬란한 대영제국의 기초를 쌓았고, 앤 여왕은 영국 국력 신장의 시기로 영국의 내실을 기했다. 또 빅토리아 여왕은 정말 대영제국의 최고점을 이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여는 등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두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다. 한때 영국병을 앓으며 사라질 것 같던 영국이 다시 떠오르면서 재기한 것도 지금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이다. 필자가 처음 영국에 도착한 때는 여성 총리, 여성 시장, 여성 국회의장이 영국을 좌지우지할 때였다. 한때 한국에서 오신 한 분이 “영국은 음기가 강해서 여자들이 통치하면 잘 된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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