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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국인 관찰기 - 베스트셀러로 본 영국인
등록일 2014-02-04 오전 11:15:35 조회수 6936
▲ 영국 런던의 한 서점. 베컴 등 축구 선수들의 자서전이 많이 보인다

통속소설 돌려 보고 사생활 공개한 자서전에 열광하고

영국의 가장 큰 서점 체인 ‘워터스톤’의 5월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 1위부터 100위까지를 살펴보자. 우선 소설이 54권으로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다음이 자서전 15권, 역사서 7권, 연보 5권, 정보 관련 5권, 요리 3권, 자기 계발 2권, 기타 9권이다. 우선 자서전과 역사서가 2, 3위를 한 것이 눈길을 끈다. 1위부터 10위권까지의 상위 순위를 보면 두 가지의 특이점을 볼 수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1, 2위로 두 개나 올라 있고, 아직 출간도 안 된 책이 7위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조앤 롤링의 ‘어른을 위한 첫 소설(Casual Vacancy)’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공전의 히트로 세계적으로 4억권의 책을 판 작가라고는 하지만 출간까지 아직 100일도 더 남은 책이 사전 예약만으로 7위를 했다는 점은 놀랍다. 작가가 이미 소설을 완성했는데도 불구하고 책이 출간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도 참 궁금하다. 후반 작업이 많이 필요한 디자인이 복잡하거나 사진이 많이 들어가는 책도 아닌데 말이다. 영국인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돈부터 내고 서너 달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이렇게 해서 출판사는 출간 전에 이미 어느 정도 팔릴지를 예상해 제대로 된 판매 전략을 세울 수 있다. 하느님도 잘 모른다는 책의 대박 여부를 영국 출판사는 출간 전에 이미 안다.
   
호주·미국 이어 영국도 에로소설 열풍
   
다른 하나는 1, 2위를 한 E L 제임스의 에로소설 ‘50가지의 그림자’ 시리즈다. 미국과 호주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같은 영어권인 영국에서의 성공도 모두 예상은 했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보통 영국 출판사는 책을 처음에는 양장본(hardback)으로 출간한 뒤 어느 정도 판매가 되어 대량 판매에 자신이 생기면 보급판(paperback)을 시장에 내놓는다. 이 시리즈 3권은 이미 미국과 호주의 성공으로 검증이 됐다고 판단해서인지 영국 시장에는 아예 처음부터 보급판으로 시작했다.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서점들은 정가에서 30% 이상을 할인해 4.79파운드(87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통상 다른 책값에 비해 상당히 싼 편이다. 이런 가격이라면 판매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예상이다. 영국 책은 보통 워낙 비싸 친구들끼리 돌려 보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많이들 빌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혼자서 은밀하게 읽어야 하는 내용이다. 해서 영국 성인 인구 한 명에 한 권씩을 목표로 삼는다는 출판사의 야심만만한 포부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영국인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시작된 바람이 미국에서 태풍이 되어 이제 영국 본토에까지 불어닥쳤다. ‘점잖은’ 영국 독자들마저도 이제는 궁금해서라도 읽어야 할 판이다. 
   
영국인들은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 읽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골라 읽는다. 거기다가 워낙 출판되는 책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라 해도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팔려 나간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한다는 영국에서도 어지간해서는 5만부를 넘기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각 부문의 10위권 서적 40권 중에 5만부를 넘긴 책은 E L 제임스의 소설 세 권과 다른 소설 한 권밖에 없다. 1위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지난 7주 동안 10위권 안에 올라 있었는데 그동안 도합 37만440권이 팔렸다. 지난주만 6만3505권이 팔려 하루에 거의 1만권이 팔린 셈이다. 좀처럼 책에 관해서는 뇌화부동하지 않는 영국인으로 봐서는 거의 광풍 수준이다. 시리즈 세 권을 합쳐서 지난 한 주에만 13만9935권이 팔려 현재까지 도합 70만3405권이 팔렸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고 다음 소설을 반드시 읽게 된다니 이제 이 시리즈의 신드롬은 시작 단계인 셈이다. 
   
본격 문학소설보다 킬링 타임용
   
사실 영국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소설책 중에는 한국과는 달리 문학을 앞에 내세우는 본격 문학소설은 별로 없다. 킬링 타임용으로 쉽게 읽고 버리는 소위 말하는 통속소설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양장본과 보급판 소설의 상위 10위 전체 20권 중에서 그나마 문학소설이라 부를 만한 책은 ‘트레인 스폿팅(Train Spotting)’의 작가 어빈 웰시의 책(‘Skagboys’) 하나에 불과하다. 영원한 세계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낳은 영국인들은 이제 더 이상 문학소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냥 쉽게 보고 즐기고 말지 ‘인생의 의미를 천착(穿鑿) 어쩌고 하는’ 그런 골치 아픈 소설은 보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100여종에 달하는 순수 문학잡지를 영국에서는 대형 서점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필자가 한국잡지출판협회 전시회에서 직접 세어봤다.) 그나마 있던 문학 잡지도 거의 온라인상으로 잠적해 버렸다. 종이로 발행되는 잡지마저 서점에는 거의 진열돼 있지 않다. 주문제이거나 회원용으로 자기네끼리만 보는 수준으로 발행되는 실정이다. 
   
워터스톤의 100위 순위 통계와 마찬가지로 선데이타임스 일반류(소설 제외) 양장본 상위 10위에도 자서전이 7권, 역사서가 2권, 자기계발서가 1권이 올라 있고, 보급판에는 자서전 6권, 역사서 3권, 에세이 1권이 들어 있다. 이렇게 영국인의 자서전과 역사서 사랑은 유별나다. 유명 인사의 자서전은 항상 베스트셀러다. 특히 정치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들의 자서전은 아무리 내용이 시원찮아도 일단은 베스트셀러 톱10에 몇 주는 들어간다. 그중에도 자필 자서전이 특히 인기다. 유명인들이 평소에는 사생활이라고 감추고 드러내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자진해서 말하니 독자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그런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내력, 그리고 평소에 궁금해하던 큰 사건들의 뒷이야기를 말해주니 독자들이 좋아해 잘 팔리고, 이 때문에 그런 책이 많이 나온다. 
   
원래 영국 정치인들은 현직에서 물러나면 조용히 낙향해 역사적인 인물의 평전이나 특별한 시대의 역사서를 썼다. 그동안의 경륜과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공과(功過)를 자연스럽게 그 안에 녹여 넣었다. 자신이 봉직했던 얘기를 자화자찬하고 변명하는 식으로 마구 늘어놓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안 쓰는 것이 덕목이었다. 더군다나 현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막후 얘기는 굳이 기밀 사항이 아니라 해도 입을 다무는 전통이 있었다. 요즘은 그간의 전통과는 달리 현직에 있을 때부터 준비하는지 정치인들이 퇴직하고 얼마 안 되어 회고록이 쏟아져 나온다. 전직 상관을 비롯해 적과 동료들을 마구 물어뜯는 내용이라 독자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어두운 사생활 엿보기
   
회고록이나 자서전 중에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이름 없는 일반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쓰라린 경험을 쓴 책이 아주 인기다. 특히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 혹은 학교에서 받았던 각종 신체적 폭력이나 성적 학대에 대한 고백서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꾸준히 독자를 모으고 있다. 이번 주에도 세 자매가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받았던 성적 학대의 고통과 그를 벗어나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낸 책이 7위에 올라와 있다.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그런 중에도 삶이 계속되어 주인공들은 이제 이런 책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다는 인간승리류의 책이다. 실화인데도 불구하고 소설보다 더 기이한 작가의 삶이 실감나고 흥미진진하게 적혀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못 놓게 한다. 독자들로 봐서는 이건 자신이나 주위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삶이다. 공분을 일으킬 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굳이 감정이입을 안 하고 볼 수 있어 좋다. 볼 때는 오금이 저려도 끝나고 나면 “아! 영화였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것이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다. 책장을 덮으면서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위안을 얻는 것이 이런 유의 자서전을 읽는 독자들의 심리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제 삼자로서 바라볼 수 있는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고 특히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영국 독자들에게는 딱 맞는 책이다.

여왕·왕가 이야기는 스테디셀러

  
자서전과 역사서가 영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영국인 특유의 사생활 과보호 집착 때문이기도 하다. 도저히 들여다볼 수 없는 타인의 어두운 사생활 구석구석을 이런 자서전들을 통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흡사 몰래 카메라나 벽 구멍을 통해 숨겨졌던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내가 가보지 못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숨어서 보는 심리와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적 인물의 자서전이나 평전도, 더 나아가 역사서에 쏟아지는 영국인의 관심에도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해석이나 발견이 저자의 오랜 연구와 조사를 통해 나타난 책을 대하면 영국 독자들은 열광한다. 
   
이번 주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주일이라서 그런지 여왕의 평전이 보급판과 양장본에 각각 한 권씩 들어가 있다. 이 두 권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왕과 왕가에 대한 숨기고 싶어하는 내용도 많이 들어 있어 인기가 높다. 또한 역사서도 여러 권 있다. 12세기 중반부터 330년간 영국을 지배한 플란타제넷(Plantagenet) 왕가의 얘기를 다룬 역사서가 양장본 9위에 올라 있다. 2차 대전 중에 벌어진 상상이 불가능할 만큼의 잔악한 인간성과 전쟁의 엄청난 참상을 그린 책(‘All Hell Let Loose’)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책(‘D-Day’)도 보급판 3, 4위에 올라 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영국인의 관심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영국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일단 영국 역사가 최우선이다. 영국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 인물들에 얽힌 얘기는 항상 최고의 인기 품목이다. 처칠, 셰익스피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헨리 8세, 빅토리아 여왕 같은 영국의 역사적 인물들은 단골 메뉴라 일정한 시기를 두고 계속해서 다른 내용들이 출판된다. 그러나 역사서 중 전쟁을 다룬 책은 꼭 영국 역사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인기가 높다. 특히 1·2차 대전을 다룬 책은 무수히도 나왔고, 나왔다 하면 거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심지어 러시아와 독일의 2차 대전 승패를 가른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다룬 안토니 비버의 책은 영국에서만 50만권이 팔렸다. 자신들과 직접 관련도 없는 역사서적이 이 정도로 팔렸다 하면 한국 출판업계 인사들은 믿지 못한다. 소설도 아닌 역사책이, 그것도 다른 나라의 전쟁을 다룬 책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팔릴 수 있느냐는 말이다.(한국에서도 2004년 번역서가 나왔으나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고, 최근 다시 번역판이 ‘피의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다른세상 간)’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말 궁금하다.) 
   
영국인이 쓴 영국 이야기를 원한다
   
영국의 서점에서 제일 독특한 서가는 ‘지방(local)’ 섹션이다. 그 지방에 관계된 다양한 책들이 비치돼 있다. 서점이 있는 도시는 물론이고 근처의 아주 작은 동네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책으로 출판돼 있다. 동네 역사책을 비롯해 사진집, 인물록, 각종 자료집, 산책로, 등산로, 유적지, 낚시터, 사냥터, 동식물 도감, 찻집, 식당 소개서 등 이루 다 예를 들 수 없는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출판돼 있어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필요한 자료가 있어 찾다 보면 거기에 대한 책이 이미 다 나와 있을 정도다. 심지어는 그 지방에서 일어났던 각종 범죄만 다룬 책도 있고 1·2차 대전을 비롯해 각종 전투에 참전했다 전사한 동네 청년들에 관한 책도 보았다.(영국에는 군인 한 명이 전투에서 죽으면 최소한 이름이 묘비, 그가 나온 초등·중고등·대학교, 고향 교회, 고향 마을의 현충탑 등 여섯 군데는 기록된다.) 대체 이런 책들을 누가 왜 썼으며 출판업자는 과연 몇 권 팔려고 출판했는지도 정말 알고 싶다. 그리고 실제 몇 권이 팔렸는지도 궁금하다.(영국 책에는 한국 책처럼 몇 판 몇 쇄라는 친절한 안내문이 없다. 심지어 언제 출판됐는지를 알리는 출판 연도가 없는 책도 있다.) 
   
이렇게 영국을 다룬 책들은 정말 많이도 나와 있다. 이미 나와 있는 책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자꾸 나온다. 무엇을 해도 반드시 기록을 남기는 전통 때문에 세세한 자료가 있어 이런 책을 만들 수 있다. 영국인 중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이렇게 빛이 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참 많다.

한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장서를 보면 되듯이 영국인이 좋아하고 잘 팔리는 책을 살펴보다 보면 영국인이 보인다. 영국인은 거창하고 장대하고 심오한 진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영국인은 정말 자신이 포함된 ‘우리들의 이야기’에만 관심이 많은 민족이다. 개인의 구질구질한 과거사로부터 자질구레한 동네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움직였던 얘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특이한 점은 영국인은 영국인이 쓴 영국 이야기를 특히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외국인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필자는 영국에 살면서 영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은 영국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을 영국인으로부터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만큼 영국인은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자신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네들의 얘기가 궁금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만 쓴다”
   
그래서인지 영국인은 자신들이 필요한, 자신들에 대한 내용과 관련해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종류의 책을 많이 만드는 반면 외국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은 안 나와 있다. 영국에 처음 와서 살다 보면 제대로 된 도시나 사람 이름 같은 고유명사를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다. 우선 원칙이 없이 경우에 따라 다 다르다. Cester로 끝나는 Worcester, Gloucester 같은 경우는 그냥 ‘우스터’ ‘글로스터’다. 그런데 Manchester, Winchester는 ‘맨체스터’ ‘윈체스터’다. 그와 비슷한 Leicester는 가히 암호 수준이다. ‘라이체스터’가 아니라 ‘레스터’로 읽어야 한다. 설기현 선수가 뛰던 축구 클럽이 있는 Reading은 ‘리딩’이 아니라 ‘레딩’이고, 그 옆의 Basingstock은 ‘바싱스톡’이 아니고 ‘베이징스톡’이다. Eden Bridge는 ‘이든 브리지’고, Exeter는 ‘엑시터’다. 같은 ‘E’라고 해도 발음이 다르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너무 절실하게 필요해 관련된 사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런던 시내 서점 사전’ 같은 별의별 사전이 다 있으니 분명 이런 사전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당 기간 노력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나중에는 런던에서 가장 큰 서점 책임자에게 문의했더니만 그 친구 말이 걸작이었다. “너 같은 친구들 삶을 우리가 왜 쉽게 해 주겠는가?(Why should we make your kind of guy’s life easier?)” 분명 앞에 “우리는 하나도 필요없는 그런 책을 왜 만들어서”라는 말이 생략되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하긴 우리 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파랗다. 새파랗다. 파르스름하다, 푸르뎅뎅하다’같이 국민 각자가 막 만들어내도 되는 우리말의 형용사와 부사의 변화다. 우리끼리는 다 이해가 되는 이런 말을 외국인을 위해서 우리가 애써서 왜 만들겠는가 말이다. 아직도 영국에 이런 고유명사 발음 사전이 없다고, 자기네끼리만 관심 있는 책만 만드는 영국인을 욕할 일은 아니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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