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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국인 관찰기 - 다이애나에 빠진 영국인
등록일 2014-02-06 오후 1:28:16 조회수 6345
▲ 다이애나 빈이 살았던 켄싱턴궁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추모 편지와 꽃다발.

기억 속에 묻은 ‘영원한 왕비’ 영국인은 왜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나

세상은 항상 시대의 아이콘을 만들어 내길 좋아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야 한다. 아이콘의 조건은 신비로운 이미지의 대중적 인물이어야 하며 눈에 띄는 용모이면서 시대를 거스르는 반항적인 면이 있으면 더 좋다. 그러다가 요절(夭折)이라도 하면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금상첨화다. 이렇게 해서 세인의 기억에 영원히 남은 시대마다의 ‘비운의 별’들이 있다. 제임스 딘,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 존 F 케네디가 그들 중 일부다.
영국인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별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 없이 영국 왕실의 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다. 다이애나는 위에서 말하는 비운의 별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더군다나 다른 아이콘들과는 달리 만들어진 ‘미디어 귀족’이 아니라 진짜 귀족 출신 왕족이니 신비스러운 이미지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보통은 다이애나 빈을 신데렐라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공주가 된 신데렐라는 아니다.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세속 귀족 집안 중 하나인 스펜서 가문에서 태어났고 남동생이 집안 작위를 이어받아 백작이다. 찰스 왕자와 결혼하기 전에도 이미 그녀는 ‘숙녀 다이애나 스펜서(Lady Diana Spencer)’였다. 단지 세자에게 부여하는 ‘웨일스 왕자(Prince of Wales)’ 작위를 가진 찰스와 결혼함으로써 ‘웨일스 공주(Princess of Wales)’로 승격했을 뿐이다.
영국 귀족 중에는 자손에게 세습이 되는 귀족(hereditary peer)이 있고 자기 업적으로 작위를 받아 당대에서 끝나는 당대귀족(life peer)이 있다. 윈스턴 처칠 총리도 스펜서 가문이어서 다이애나와는 친척 간이다. 다이애나가 태어난 곳은 지금도 여왕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샌들링햄 영지 내의 파크하우스다. 당시 다이애나 부모는 여왕으로부터 이 집을 빌려서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애나는 어릴 때 장래 시동생이 될 찰스의 동생 앤드루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놀았다. 다이애나의 장례식에서 왕가를 향해 쓴소리를 한 동생 스펜서 백작의 영세대모가 엘리자베스 여왕일 정도로 왕가와 집안끼리 가깝다.

서민들에게 친숙한 귀족

 다이애나 세자빈은 미모 또한 출중해 살았을 때는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여인으로서는 아직 한창 아름다운 나이에 죽어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있다. 다이애나가 살아있었으면 지금 몇 살 정도 되었을 것 같으냐고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대개 “40을 갓 넘겼을 것”이라거나 심지어는 아직도 그녀가 죽을 때 나이인 36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녀가 지금 살아있다면 52살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그녀는 아름답게 남아있다.
다이애나의 인기는 이런 외모나 조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회활동, 특히 자선활동은 원래 왕족의 의무라고 해도 그녀는 유별나게 열중했다. 결혼생활이 위기에 달하는 시점에서는 오로지 삶의 목적을 여기에 둔 듯하기까지 했다. 워낙 어린 나이인 20살에 시집을 왔다. 다이애나가 나이에 비해서도 유난히 어렸다면 찰스는 나이보다 너무 중늙은이였다. 13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한 세대는 차이가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85년 미국 방문 때 당시 유명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와 춤을 추던 다이애나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 그녀는 정말 철없는 어린애였다. 찰스는 그런 어린 아내를 데려다만 놓았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고는 하나 왕족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특히 텃세가 심한 궁궐에서 마음을 못 붙였다. 남편마저 냉대를 하니 그녀는 바깥으로 돌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예쁘고 젊은 세자빈이 자신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 주니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원래 거만하고 차가운 다른 왕족들에 비해 따뜻하게 평민들을 대하니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다른 유명 인사들과는 달리 그냥 의례적이 아닌 진심이 우러나오는 몸짓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궁 안에서는 전혀 취급을 못 받는데 밖에만 나가면 폭발적 인기를 누리니 어린 마음에 신이 났을 터이다. 그래서 자신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언행에는 더욱 정성이 담기고 진정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다이애나의 인기는 영국 왕족 중에서는 최고였다. 왕실 역사에서 이 정도의 인기를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로 인해 왕가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엄마

영국의 일반인들이 특히 다이애나를 좋아한 이유에는 그녀의 평민 취향을 동반한 반골 기질도 한몫한다. 두 왕자를 키우면서 그녀는 자신이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왕가나 귀족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일반인들이 자식 키우듯 했다. 보통 왕자는 어릴 때는 왕궁에서 개인 교습으로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크면 학교로 보내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유치원부터 외부로 보내기 시작했다. 상류층이 가는 특별한 사립학교가 아닌 중산층이 가는 선착순 입학의 사립학교에 보내면서 그녀의 파격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할 때 심지어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하기도 했다. 옷차림도 동네 아줌마가 아이 학교 가는 정도로 수수하게 입었다. 윌리엄을 한 팔에 안고 집에서 입는 평상복 같은 평범한 얇은 치마를 입어 햇빛에 속옷 입은 자태가 다 드러나 센세이션을 일으킨 유명한 사진도 사실 그런 복장이었다. 사람들은 신비로운 우상도 좋아하지만 의외로 이런 감히 범접 못할 사람이 자신들과 같은 행동을 할 때 더 친밀감을 느끼며 열광한다. 다이애나는 이런 일련의 행동으로 일반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까운 친구나 이웃같이 느끼게 만들어 버렸다. 기존의 왕족 중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인물형이 나타났으니 대중이 그녀에게 쏟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다이애나는 다른 왕족들과는 달리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정말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영국 왕실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직접적인 사랑을 받아 본 경우는 참 드물다. 모유를 먹고 큰다는 것은 더구나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낳자마자 하녀가 데리고 가 따로 키우면서 유모 젖을 먹고 큰다. 엄마는 공식적인 행사나 파티 같은 바깥일에 바쁘고 교육이나 예의범절 같은 일은 집사들의 소관이다. 자식에게 살가운 애정 표현을 한다든가 응석을 받아주는 일은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 생각해서 금기사항에 속했다. 이런 식의 육아 방식은 굳이 상류층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계급에 퍼져 있다. 그래서 영국인이 감정 표현을 쉽게 하지 못하고 특히 애정 표현은 더욱 인색하다. 일껏 한다고 해도 어색하다.

사랑에 목마른 여인

영화에서 부부간의 살가운 애정 표현을 보았다면 그건 분명 영국 영화가 아니다. 영국 부부간의 애정 표현은 일상생활에서 잘 볼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부모의 애정을 못 받고 엄격하게 키워진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면 자립심을 키운다는 이유로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라 불리는 전통 명문기숙 사립학교에 입학시킨다. 퍼블릭 스쿨이란 명칭은 대개 수도원 부속학교로 출발한 사립학교들이 일반 신자들의 자녀를 받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즉 신학생이 아닌 일반인(public)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퍼블릭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이런 지금까지의 왕가나 영국 상류층의 전통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아이들을 키우고 재우고 모유를 고집했다. 학교도 무늬만 사립인 학교에 보내어 왕자들이 어릴 때부터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녀를 아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다이애나가 ‘아주 헌신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아이들에게 애정표현을 주저하지 않는(devoted, imaginative, demonstrative) 엄마’라는 점은 인정했다. 동시에 ‘아이들에 대한 결정을 찰스나 왕가에 부탁한 적도 없었다. 아이들의 이름도 직접 골랐고 왕가 유모도 거절하고 자신이 선택했다. 학교, 옷, 외출 계획 등도 누구한테 맡기지 않았고, 가능하면 아이들 학교도 손수 데려다 주곤 했다. 본인의 사회활동도 되도록 왕자들의 일정에 맞춰 정하곤 했다’고 영국 언론은 썼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모자 관계를 귀족 출신인 다이애나가 시작한 데는 본인의 아웃사이더적인 평민 취향도 한몫했지만 그녀의 왕실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다이애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귀족이되 평민 취향도 진했고, 왕족이되 왕가에 속하지 않은 것 같았다. 평민들 속에 있을 때 그녀는 더 편한 것 같았고 더 빛이 났었다. 이렇게 묘하게 경계선상에 위치한 그녀였기에 오래된 왕실 전통을 따르지 않아도 별 말썽이 없었다. 아웃사이더가 사정을 모르고 깨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평민 출신인 왕세손빈 케이트 미들턴이 그런 일을 처음으로 벌였다면 훨씬 힘들었을 터이고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이애나는 아주 기가 막힌 때에 고루한 영국 왕실을 바꾼 개척자였던 셈이다.

똑똑한 귀족은 싫다

아름다운 미인으로 안타깝게 요절한 ‘미인’ 다이애나에 대한 얘기는 모두 미화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그녀의 아둔한 두뇌마저도 세자빈이나 여왕이 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이라는 말로 미화된다. 물론 이는 미화가 아니고 재미있자고 하는 말이긴 하지만. 다이애나가 세자빈 특히 여왕이 되기 위해 갖췄던 최고의 조건은 미모, 좋은 집안 출신, 스캔들 없었던 처녀 시절 같은 것들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였다는 말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군주제’인 영국 왕이나 왕비는 적당히 나쁜 머리가 필수 사항이라는 말이 있다. 통치하지도 않는데 괜히 똑똑해 봐야 말썽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냥 짜주는 일정에 따라 얼굴로만 웃으면서 정해진 대로 테이프나 끊고 써준 내용을 읽기만 (최근에 영국 여왕이 국회에서 읽은 시정연설처럼) 하는 데는 좋은 머리가 필요없다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보면 다이애나는 여왕감으로는 최고였다.
영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보는 학력고사 GCSE시험(다이애나 시절에는 O level)에서 합격을 하나도 못했다. 보통 10과목 선택해서 공부하고 시험쳐 과목당 60점 이상만 맞으면 합격이다. 공부 좀 한다는 한국 교민 자녀들은 10과목 전체가 A이고 그중 반은 A+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그런데 다이애나는 단 한 과목도 합격을 못했다. 본인은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TV에 나와 깔깔대며 얘기하면서 즐거워했다. 하긴 유럽 귀족은 전쟁을 하는 무인(武人)이니 귀족 집안 자식들이 공부 못하거나 공부하지 않는 것을 흉보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긴 해도 좀 심하긴 했다. 실제 영국에서 가장 귀족학교라는 이튼스쿨 졸업생 중 많은 숫자가 대학 진학을 안 한다. 먹고사는 일이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중산층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다이애나가 자신의 성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반면에 찰스 왕자는 보기보다 똑똑해서 세속적인 일에 대해 자주 발언하는 바람에 정치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고 경계까지 한다. 왕자일 때 발언도 문제지만 왕이 되어서까지 그러면 그 무게의 차원이 달라 상당히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차제에 다음 왕은 다이애나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늙은 찰스보다는 젊고 산뜻한 윌리엄이 더 낫지 않나 하면서 영국 정치권 조야에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런 분위기는 다이애나 사망 10주년이 되던 해인 2007년 8월 31일에도 볼 수 있었다. 마침 필자는 당시 다이애나가 신혼생활과 이혼 후 살았던 켄싱턴궁 정문에 갈 일이 있었다. 정문에는 그녀의 기일이 되면 언제나처럼 꽃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옆에 걸린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여왕의 만수무강을, 다이애나여 영원하라. 찰스 왕과 카밀라 왕비는 안돼(Long live the Queen, Diana forever, King Charles Queen Camilla never)’. 먹고사는 일에 매이지 않아 좋기만 할 것 같은 찰스의 삶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찰스 왕세자 측으로 봐서는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수십 년을 이어져 온 카밀라와의 사랑, 세상에 맞서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찾은 그 사랑을 세상은 인정을 안해 주니 말이다. 만일 카밀라가 다이애나의 반만큼만 예뻤어도 이들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죽을 때까지 찰스를 사랑했고, 그녀의 바람은 순수한 맞바람이 아님을 영국인들은 안다. 찰스의 사랑을 얻기 위한 비원과 애원의 몸부림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찰스와 카밀라의 사랑은 아주 오랫동안 국민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이애나와 승마 교사 제임스 휴잇 사이의 스캔들이 처음 터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남편이 바람 피운다고 자식까지 둔, 장차 왕비가 될 사람이 맞바람을 피웠느냐고 욕을 했었다. 사정을 알고 보니 다이애나의 바람보다는 찰스의 바람이 먼저였다. 모든 전기 작가들이나 주변 인물들이 하는 얘기는 그녀의 모든 행동은 찰스의 사랑을 다시 돌이키기 위한 ‘잘못된 시도이거나 삐뚤어진 반항’이었다는 것이었다.

스캔들도 동정의 대상

그녀는 결국 어느 남자로부터도 제대로 된 사랑이나 보호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제임스 휴잇도 나중에 둘의 이야기를 신문사에 팔아먹고 책까지 냈다. 심지어는 다이애나와 주고받은 정말 사적인 64장의 편지를 1000만파운드(200억원)에 팔려고까지 했었다. 파키스탄 출신 심장전문의 하스나트 칸과의 관계도 상당히 오래가고 진지했다고는 하나 칸 박사가 먼저 결별을 선언하고 떠났다. 그리고 바로 만난 것이 세계 최고 백화점 헤롯의 주인이자, 설기현 선수가 있던 풀햄 축구클럽 소유주 모하메드 알 파이에드의 아들 도디 파이에드이다. 다이애나는 이들 모두를 이용했을 뿐 결코 사랑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혼 후 만난 남자 두 사람이 다 백인이 아니며 무슬림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들을 선택한 이유가 왕실을 모욕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다. 영국 국교 성공회의 수장이자 차기 왕의 어머니가 무슬림의 아내가 되었다면 정말 해괴한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온몸을 불사르며 벌이는 기가 막힌 자폭의 복수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이애나 살해설이 나오고 있다. 살해설을 그냥 넘기기에는 아직도 현장 상황에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 많다. 현장에 있던 4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다이애나의 경호원은 정말 편리(?)하게도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니 말이다,
미인박명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일생이 너무 불쌍해서인지 세상은 그녀가 떠난 지 벌써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녀를 놓아 주지 않는다. 다이애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본격적인 상업 영화가 내년 초에 두 편 나온다고 한다. 다이애나를 벌써 보내기에는 그녀는 너무 아름답거나 그녀의 일생이 너무 슬퍼서인가 보다. 분명 영국인의 시간과 기억은 다이애나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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